‘살면서 가급적 경찰서와 병원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세간의 얘기가 있다. 아마도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피해를 당하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묻어나는 말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물리적 환경은 이러한 바람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게 현실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경찰활동과 무관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극히 난망(難望)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경찰과 접촉하게 되는 많은 방법 중 가장 일반화되고 이용빈도가 높은 수단은 112신고라 할 수 있다. 그만큼 112신고에 대한 경찰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은 국민의 정당한 요구이자 기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경찰의 여타 기능에 비해 112신고의 접수, 지령 분야는 상대적으로 소홀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112접수, 지령파트의 지원자가 없어 승진자중에서 순번을 정하거나 연령순으로 강제 발령을 내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이런 구조적 소홀함이 오원춘 사건 등 경찰에게는 너무나 뼈아픈 경험을 하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이에 경찰은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픈 사건이 재발되어서는 안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112신고사건 처리 절차를 기초부터 새로이 쌓아 올리는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이번에 발표한 경찰의 ‘112신고 총력대응 체제 구축계획’은 그간 노력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치안상황의 90% 이상이 112에서 비롯되며 경찰 치안활동의 시작점이며 종결점은 112라는 인식하에 수 십 년 간 굳어온 고정관념을 과감히 혁파하는 방안들이 위 계획에 담겨 있다.
기능간, 부서간의 칸막이를 걷어내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를 수사하는 강력계 형사도, 음주운전 단속 및 교통정리 등에 전담하던 교통경찰도 독자적으로 112신고를 처리토록 했다. 또한 112신고의 적폐라 할 수 있는 관할주의를 과감히 타파함으로써 경찰관서의 관할지역에 관계없이 신고현장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경찰관을 우선 출동시키는 체제를 갖추었다. 아울러 경찰서장 등은 태블릿PC를 활용하여 긴급신고 접수 여부, 사건진행 경과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함으로써 효율적인 경찰력 운용 및 사건지휘가 가능해졌다.
물론 이번 계획 하나로 안전과 질서의 확립을 바라는 국민의 요구와 기대를 완벽히 만족시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허나 112는 최후의 예방치안으로 우물쭈물하여 골든타임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경찰은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국민들의 적극적 협조 없이는 경찰의 이러한 노력은 허망한 짝사랑에 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민들의 올바른 112신고 및 인식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 첫째로는 112신고 시 신고자의 현재 위치를 신고접수 경찰관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신고자가 어디 있는 지는 112신고 대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범죄피해 등 긴급한 상황 하에서 정확한 번지수를 말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하지만 도로 표지판, 주변의 건물명이나 업소 간판에 적힌 일반 전화번호를 얘기해도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농촌지역의 경우 길가의 전봇대에 적혀있는 숫자나 가로등에 표시된 숫자만으로도 위치파악이 가능하다. 또한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신고하는 경우 스마트폰 상 GPS기능을 활성화시킨다면 수월하게 위치파악이 가능하다.
둘째, 허위신고 근절에 국민적 참여가 필요하다. 112허위신고는 경찰력의 낭비를 초래함은 물론 같은 시간대 위험에 처한 타인의 골든타임을 빼앗아 가는 무서운 범죄인 것이다. 112는 위급상황에서 경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신속하게 연결되어야 할 최후의 연결선으로 허위신고는 내 가족이나 친구가 그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는 인식의 확산이 절실하다.
셋째, 범죄 신고가 아닌 생활민원 관련 상담은 182나 자치단체 콜센터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2013년 112신고의 경우 전체 신고의 약51%가 ‘체불임금을 받아 달라’ ‘집 보일러가 고장 났다’ ‘전기가 나갔으니 와 달라’ 등의 경찰 소관 이외의 업무이거나 경찰의 출동이 필요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관은 ‘돌아온 슈퍼맨’이 아니다. 보일러를 고칠 수도 전기를 나오게 할 수 없다. 이러한 이기적 신고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 그 누군가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도움요청 기회를 막아버리는 ‘법제화되지 않은 범죄행위’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112에 대한 올바른 국민의 인식과 적극적 협조를 바탕으로 한 이번 경찰의 조치는 그간 쌓여온 경찰불신의 쇠사슬을 끊어내고 경찰신뢰의 밑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경기지방경철청 제2청 112종합상황실 경위 김정기